개발 철학

2015년 10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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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회사 입사 이후 게임 개발이 업이 되다보니 이것 저것 게임 개발에 대한 철학 같은 것들이 생긴다. 그런데 지금 회사의 기획하시는 분은 전혀 그런게 없는 것 같아 불만이다. A 게임에는 A1이라는 요소가 좋고 B 게임에는 B1이라는 요소가 좋고 C 게임에는 C1이라는 요소가 좋으니 우리는 A1, B1, C1을 다 넣자라는 식이다. 사실 모두 있으면 좋은 요소들이다. 그런데 이게 다 있다고해서 그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A에는 실시간 토너먼트가 있고 B에는 입장료를 지불해야 참여 가능한 토너먼트가 있다고 하자. 유저는 어떤 토너먼트에 입장할까? 유저 입장에서는 무얼 참여해야 할지 모른다. 그냥 첫눈에 봤을 땐 입장료를 지불하는 방식이 보상은 많이 줄 것 같지만 입장료를 지불해야 하므로 진입 장벽이 있다. 그래서 신규 유저들은 대부분 실시간 토너먼트를 참여할 것이다. 그러다보니 입장료를 지불해야하는 토너먼트는 어느 정도 플레이 경험이 많은 유저만 참여할 수 있다. 하지만 시스템이 어떻게 됐든 참여자수가 적으므로 (토너먼트 특성상) 재미가 없을 확률이 높다. 결국 입장료를 지불해야 하는 토너먼트는 도태될 것이다. 개발자 입장에서도 두 시스템 모두 크기가 작지 않은 시스템이고 불필요하게 중복되는 요소가 많다.

또다른 예를 들어보자. 미니게임으로 팩맨을 넣자는 기획이 나왔다. 팩맨은 8비트 게임기 시절 나온 게임이기 때문에 모든 부분을 도트 그래픽으로 제작한다. 그러다 자신이 죽을 때 이펙트가 약해서 파티클 시스템을 넣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런데 그 파티클을 도트가 아니라 화려한 것으로 만들자고 한다. 도트로 하면 죽었다는 느낌이 별로 없어서라고 한다.

위 두 예에 나온 기획이 틀리다는 것은 아니다. 그걸 유저가 정말 좋아할 수도 있다.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그냥 다 넣어봤어. 마치 짬뽕을 좋아하는 사람 따로, 잡탕을 좋아하는 사람 따로인 것처럼. 그렇지만 기획에 철학이 없으면 아무래도 근사한 퓨전 요리가 아니라 개밥이 될 것 같다.

애플이 성공한 요소로 나는 스큐어모피즘과 미니멀리즘을 꼽는다. iOS에 적용된 기본 앱의 아이콘과 UI를 보면 애플이 말하는 ‘감성’이 무엇인지 유추해볼 수 있다. iOS6까지의 시계 아이콘의 초침 움직임과 뉴스스탠드 폴더를 보면 감탄이 나온다.  그건 비단 애플의 기술, 디자인 때문이 아니라 철학 때문이다. (다만 iOS7에서 앱 디자인을 전면 수정하면서 많은 네티즌의 웃음을 샀었다. http://jonyiveredesignsthings.tumblr.com/ 의 패러디도 그 중 하나) 아이맥, 맥북이 사랑받았던 이유도 애플이 추구하는 미니멀리즘을 극대화한 디자인 때문이었다.

그래서 결론은 우리 게임의 기획은 맘에 들지 않는다. 철학은 없고 모방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