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vs 디지털

2015년 10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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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에 배포 관련 회의를 하다 스크럼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아날로그가 좋냐 디지털이 좋냐‘였다. 사실 스크럼 도구에 한한 이야기였지만 다른 주제에 대해 적용할 때에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2000년대 이후로 디지털이 핵심키워드로 부각되면서 디지털의 중요성이 많이 언급되지만 정작 이를 제대로 활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예를 들면 SNS를 사용하는 사람은 많으나 태그, 히스토리 기능을 쓰는 사람은 많지 않다. 또한 스케쥴 어플은 많으나 정작 메모나 일정 관리할 때 노트를 이용하는 사람이 더 많다. 이는 디지털이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한계 때문인 것 같다.

현재 온라인으로 배포되는 많은 도구들은 사용법을 알아야 한다. 일단 찾고 가입하는 것부터 쉽지 않고 설정, 사용법을 익히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이러한 과정을 완전히 거치려면 보통 1달 이상이 걸린다. 그래서 새로운 온라인 도구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닥치면 거부감부터 든다. 그렇다고 새로운 도구를 사용함으로써 얻는 이점이 더 큰 것도 아니다. 온라인 도구를 사용하는 과정 자체는 언제나 아날로그보다 번거롭다. 대부분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 브라우저 또는 프로그램을 실행시킨 후 로그인 과정을 거쳐야 하니깐.

이에 비해 아날로그 도구들은 접근성이 용이하고 사용법 또한 쉽다. 다이어리는 딱봐도 날짜별로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는 노트라 인식할 수 있고 가계부도 사용법을 공부할 필요없이 수입, 지출 내역을 정리하고 기록할 수 있다. 사용하는 과정도 단순하다. 물건을 찾고 열어보는 정도에 그친다.

그러나 난 디지털이 더 좋다. 아날로그 도구들이 효율적이지 않기 때문에. 아날로그 도구들이 접근성이 좋다고 하지만 어떤면에서는 그렇지 않기도 하다. 회사에 붙여둔 포스트잇은 집에서는 볼 수 없다. 그리고 집에 놓아둔 다이어리는 밖에 나가면 열어볼 수 없다. 그리고 작년 생일에 있었던 일을 다이어리에서 찾으려면 페이지를 하나하나 들춰봐야 한다. 편의성에서도 불편함이 많다. 간혹 중간에 일기 적는 것을 빼먹고 나중에 그날의 일기를 다시 적으려면 날짜 순서가 엉망이 된다. 나중에 일기를 고치려면 지우개로 지우거나 볼펜으로 그어버리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아날로그의 감성을 디지털의 감성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아날로그의 감성은 추억 또는 사용 과정상에서의 느낌일뿐 그 이상은 아니다. 추억은 디지털 도구를 사용하면서도 느낄 수 있다. 사용 과정상에서의 느낌은 어찌보면 아날로그의 불편함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종이 위에 펜으로 글씨를 쓰면서 느끼는 사각거림은 좋으나 이는 그만큼 펜으로 글씨를 쓰는 속도가 느리다는 것을 반증한다. 펜으로 글을 쓰면서 생각하는 시간은 많아지지만 오히려 생산성에는 저해하는 요소다. 글쓰기에는 언제나 퇴고라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를 한 번 더 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디지털을 이용한 글쓰기에서도 퇴고를 하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갖을 수 있다. 오히려 글을 적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생각하는 시간의 비율은 늘어난다.

물론 이는 내 생각, 느낌일 뿐이다. 내 말이 맞고 다른 사람들의 말이 틀리다는 것은 아니다. 그치만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의 감성을 느꼈으면 좋겠다.

나도 모니터의 강한 빛 아래에서 글을 읽는 것보다 스탠드의 은은한 빛 아래에서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빛이 자극적이지 않은 모니터가 나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