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미군 기지 이전

2006년 5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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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기지이전은 1882년 청나라군의 용산주둔 이후 일본군, 미군으로 이어진 수도 서울 중심부의 외국군대 주둔역사를 청산하고 국민적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한 차원에서 1988년부터 우리가 미측에 요구한 사업입니다. 지난 1990년 한미간 합의 후 일부 추진중에 이전비용 문제 등으로 우리가 중단을 요청한 후 2003년 한미 정상이 재추진키로 합의했으며, 현재 반대단체들도 당시 용산미군기지의 이전을 적극적으로 요구했습니다. 이제와서 용산미군 기지의 평택이전을 반대하는 것은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정부와 시민단체의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지난 2004년 12월 국회의 비준동의, 헌재의 각하 결정 등 국민적 합의를 받아 기지 이전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사업이 완료되면 우리는 미군기지 부지로 362만평을 신규로 제공하는 대신 5,167만평의 우리 땅을 되돌려 받게 됩니다. 평택지역 349만평과 포항ㆍ대구지역 13만평 등 총 362만평을 신규로 제공하는 대신에 전국 산재 35개 기지, 7개 훈련장 총 5,167만평의 미군기지를 돌려받아 순수하게는 4,805만평을 되돌려 받게 되며, 서울과 부산 등 도심 한복판에 있던 미군기지가 이전함으로써 주민불편이 해소되고 지역개발이 촉진되는 등 국가균형발전을 도모할 수 있게 됩니다.(서울, 부산, 부천, 의정부, 원주 등 12개 시ㆍ군 혜택) 이전부지로 평택지역이 결정된 것은 국가안보와 군사 전략, 작전적 측면과 경제적 측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기존 군사시설의 연계 활용성(공군기지, 캠프험프리 등) 극대화로 부지 소요와 이전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고 철도, 항만, 도로시설 등의 이용가능성 등을 고려하여 평택지역을 최적의 기지 이전 부지로 판단했습니다.

– 국방부

아~ 막상 용산미군기지이전이 나의 주변에 큰 문제로 나타나다니…. 정말 뭐라 말이 안나온다. 탄원서 제출하려니 팩스, 스캐너가 없다. 전에 스캐너 있었는데 집에 와보니 그게 없다. 아우…… 정말 아끼던 후배였는데…… 학교 생활에 전혀 문제가 없었고 오히려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우리에게 웃음만을 주었고 본보기가 되주었던 학우인데 이런 일을 당하다니 같은 과 선배로서 너무나 안타깝다. 나라 일에 대해 소극적인 나 자신과 비추어보면 오히려 그 후배는 사회에서의 선배이다. 우리과 많은 학우들의 탄원서, 정확히 말하면 우리 학우들의 마음과 후배의 진정한 모습이 판사에게 잘 전달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언어 능력이 모자르고 지식이 부족하지만 용산 미군 기지 이전에 대해 잠깐이나마 써볼까 한다. 위에 첨부한 글은 국방부에 올려져 있던 것이다. 읽어 보면 당연히 ‘용산 미군 기지 이전이 마땅한 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 그러나 사실 관계가 불분명한 근거가 종종 있다. 일단 ‘우리가 미측에 요구한 사업’이라는 것이 과연 사실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 이전 비용을 이전을 요구한 측에서 부담해야 한다는 원칙과 관련된 사실은 아닐까?

현재 반대단체들도 당시 용산미군기지의 이전을 적극적으로 요구했습니다. -> 과장

도심 한복판에 있던 미군기지가 이전함으로써 주민불편이 해소되고 -> 모순

지역개발 촉진 -> 결국 세금으로 개발하는 것이고 미군 기지 이전을 합리화하려는 묘책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님비 현상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이기는 하지만) 미군 기지 이전비용도 우리나라가 부담한다는 사실에 비추어볼 때 미군 기지 이전은 해당 지역 주민 뿐만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의사를 물어보았어야 했다. 국민투표도 필요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