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기다리다가
오늘 어쩌다 11시 좀 안되어서 퇴근하고 버스를 타는데 줄이 길더라. 줄을 서는데 웬 5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여기 3000번 줄 맞냐고 물어보셨다. 난 아니라고 저기 앞이 3000번 줄이라고 했는데 이거 탈거라고 하시더라(?) 그리고 가만히 있는데 뜬금없이 나한테 학생이냐고 물어봤다. 뭐… 그 나이쯤 되시면 내 또래는 다 학생으로 보일테니… 암튼 아니라고 하면서 이 앞에서 게임 만드는 일 한다고 하니까 그 분이 컴퓨터는 어렵고 기술 발전이 빠른데 대단하다며 난 막노동 한다고… 블라블라 하셨다. 난 진짜 막노동 하시는 분으로 안보여서 ‘그래도 관리직 아니세요?’라고 하니 연구소장님이란다. 현대건설 해양 산업 쪽 일 하신다고 하니 해양 플랜트 연구소장님이신듯. 뜬금없이 이것저것 물어보셔서 처음엔 당황했는데 연구소장님이라니 대단해보였다. 말씀도 젠틀하게 하시고 버스타기 직전에 ‘주제 넘게 이것저것 물어봐서 죄송해요’라는 말씀하셔서 내가 더 무안했다. 동생은 현대 건설 연구소장님이 버스를 탈리 없다며 뻥 아니냐고 하는데 그건 동생의 대기업 임원에 대한 환상이 쩌니까 그런거고 탈 수도 있지. 서울대 동문 중 전설인 임지순 교수님도 셔틀 버스랑 지하철을 꾸벅꾸벅 조시면서 타시는 걸 봤으니깐. 뻥치는 사람이 마지막에 그런 말 남길리 없음. 뻥치는 사람이라면 잘난것도 없으면서 나 잘났다는 티를 마지막까지 냈겠지.
나도 나중에 그런 분처럼 되고 싶다. 나보다 어린 사람한테도 겸손하면서 주제 넘는 행동해서 죄송하다는 말 남길 수 있는 그런 사람.